서론
당신이 친구와 길을 가는데 길가에 국화와 처음 보는 꽃이 함께 피었다고 생각해보자. 친구가 꽃들을 향해 “부용이 피었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부용이 가리키는 대상은 국화가 아니라 처음 보는 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 당신이 베트남 여행을 가서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현지인의 안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현지인과 같이 길을 가는데 국화와 함께 처음 보는 이름 모를 꽃이 함께 피어있다. 현지인이 꽃밭을 보면서 “Hoa cuc!”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Hoa cuc이 가리키는 대상이 어떤 꽃인지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위의 예시는 화자가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따라 새로운 단어 의미의 해석이 달라짐을 보여준다. 이미 명칭을 알고 있는 사물과 명칭을 모르는 사물이 있는 상황에서 나와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화자가 새로운 단어를 말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단어가 명칭을 모르는 사물을 지칭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외국어 화자가 새로운 단어를 말한 다면 우리는 새로운 단어가 이름을 모르는 사물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이미 이름을 알고 있는 사물을 가리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언어는 한 가지 지시체에 대해 서로 다른 명칭을 가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아동들이 이러한 언어의 본질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아동들은 언제부터 단어에 대한 지식이 모국어 화자 간에는 공유되지만, 모국어와 외국어 화자 간에는 공유되지 않음을 이해할까?
기존 연구에서는 이러한 연구 문제에 대해 상호배타성 과제를 사용하여 접근해왔다(
Au & Glusman, 1990;
Byers-Heinlein, Chen, & Xu, 2014;
Haryu, 1998). 상호배타성 가정은 사물과 명칭이 일대일로 연결될 것이라는 가정으로, 이러한 가정에 근거하여 아동들은 화자가 새로운 단어를 말했을 때 단어의 지시체가 새로운 사물일 것이라고 이해한다(
Ghim, 1994;
Lee, 2005;
Markman & Wachtel, 1988;
Markman, Wasow, & Hansen, 2003;
Merriman, Bowman, & MacWhinney, 1989). 예를 들어, 아동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물(예: 신발)과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물(예: 효자손)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명칭(예: 효자손)을 들었을 때 아동들은 새로운 명칭의 지시체를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물로 이해하는 경향을 보인다.
청자가 화자의 의사소통 의도를 추론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상호배타성 원리가 사용될 수 있다는 이론적 관점이 존재한다(
Clark, 1987). 예를 들어 친숙한 사물인 신발과 전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사물이 있는 상황에서 화자가 새로운 단어인
미도를 발화할 때 청자는 다음과 같은 추론 과정을 거칠 수 있다.
1) 나는 신발이 ‘신발’이라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
2) 화자가 신발에 대하여 말하고자 했다면 ‘신발’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3) 하지만, 화자가 ‘신발’이라고 하지 않고 미도라고 말했다.
4) 화자는 신발이 아니라 저 새로운 물건을 말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관점에 의하면, 상호배타성 원리에 근거하여 단어의 의미를 추론하고 학습하는 능력은 타인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 즉 마음이론 발달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Bloom, 2000;
Song, 2006).
상호배타성 원리가 적용되려면 단어에 대한 지식이 화자와 청자 간에 공유된다는 가정이 성립되어야 하며, 화자와 청자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상호배타성 가정이 단어의 적절한 의미를 추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청자가 화자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면 “화자가 신발에 대하여 말하고자 했다면 ‘신발’이라고 말했을 것이다.”라는 2단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미도’를 새로운 사물과 배타적으로 연결할 수 없다. 이렇듯 외국어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상호배타성 가정을 보류할 수 있는 능력은 모국어와 외국어가 상이한 의사소통 체계이며, 언어에 대한 지식이 모국어 사용자와 외국어 사용자 간에는 공유되지 않음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모국어 화자와 외국어 화자를 구분하는 능력은 영아기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14개월 영아들은 외국어 사용 행위자가 하는 행동보다 모국어 사용 행위자의 행동을 더 잘 모방하는데(
Buttelmann, Zmyj, Daum, & Carpenter, 2013), 이는 영아들이 모국어 사용자를 외국어 사용자와 구분하고, 모국어 사용자를 사회 학습의 준거로 선택함을 보여준다. 모국어 사용자와 외국어 사용자간에 단어가 공유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초적인 기대도 영아기에 존재한다. 13개월 영아들은 모국어 화자와 외국어 화자가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 같은 단어를 사용할 경우 응시시간이 증가하는데, 이는 다른 언어 사용자들은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기대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인 것으로 추정된다(
Scott & Henderson, 2013). 이상의 결과들은 영아들도 모국어와 외국어를 구분하는 능력과 각 언어에는 서로 다른 단어 체계가 있음을 이해함을 시사한다.
이에 비해 모국어와 외국어 단어를 이해할 때 다른 단어가 반드시 다른 사물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해, 즉 상호배타성 가정을 보류하는 능력에 대한 증거는 유아기 아동들에게서 일관되게 발견된다. 기존 문헌에 따르면 모국어 단어들 간에는 각기 다른 단어가 다른 사물을 지시하지만, 모국어와 외국어 단어들 간에는 이와 같은 원리가 반드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4세 이후에야 나타난다. 예를 들어,
Haryu (1998)의 연구에서는 3, 4, 5세의 일본 아동들에게 일본어 사용 실험자 한 명이 등장하여 친숙사물과 비친숙사물을 제시한 후 영어를 사용하는 인형이
mose를 갖고 싶다고 하면서 이 새로운 단어의 지시체로 두 사물 중 한 사물을 선택하도록 했다. 그 결과, 3세 아동은 상호배타성 가정을 사용하여 비친숙사물을 고른 반면(40명 중 36명), 4–5세 아동은 두 물체를 우연수준으로 선택하였다(비친숙사물 선택 4세: 40명 중 28명, 5세: 40명 중 17명). 이 연구 결과는 외국어의 새로운 단어의 지시체 추론에 있어서 상호배타성 가정을 보류하는 능력이 4세에서 출현함을 제안한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언어 간 상호배타성 가정을 보류할 수 있는 능력은 4세 전후의 아동에게서는 언어 환경에 상관없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4세의 단일언어 사용, 이중 언어 사용 미국 아동들 모두 단일언어 혹은 이중언어 화자가 영어의 새로운 단어를 발화할 때는 상호배타성 원리를 사용하여 명칭을 알 수 없는 사물을 선택하였다. 반면, 이중 언어 사용 화자가 스페인어로 새로운 단어를 발화할 때는 이미 명칭을 부여받은 사물과 명칭을 알 수 없는 사물을 비슷한 비율로 선택하였다(
Au & Glusman, 1990). 이것은 4세 아동들이 화자의 언어가 달라지는 경우에는 상호배타성 가정을 보류하여 영어와 스페인어의 다른 단어가 같은 대상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대상을 가리킬 수도 있음을 이해함을 보여준다.
최근 연구는 좀 더 어린 아동에게서는 언어 환경에 따라 상호배타성 원리를 적절하게 사용 또는 보류할 수 있는 능력의 발달이 달라짐을 보였다.
Byers-Heinlein 등(2014)의 연구에서 영어 실험자는 먼저 아동과 영어로 상호작용하면서 세 가지 비친숙사물(A, B, C)을 보여주고 그중 첫 번째 사물(A)에 대해
fep이라는 명칭을 알려주었다. 그 후 영어 실험자는 첫 번째 사물(A)과 명칭을 알려주지 않은 사물 B를 제시하고 아동에게 wug를 찾아보게 하였다. 이 시행에서 아동들은 사물 B를 선택하였고 이는 상호배타성 가정과 일관되는 반응이었다. 다음 단계에서는 중국어 실험자가 아동과 상호작용하며 기존에 영어 실험자가 명칭을 알려주었던 사물 A와 명칭을 알려주지 않은 사물 C를 아동에게 제시하고
kuo라는 새로운 단어의 지시체를 찾아보게 하였다. 그 결과, 2세 단일 언어 사용 아동의 경우 사물 A를 고른 아동보다 사물 C를 고른 아동이 유의미하게 더 많았다. 이것은 2세의 단일 언어 사용 아동들이 중국어 화자가 물체의 영어 명칭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모국어 화자와 외국어 화자 간에 물체들의 명칭이 공유될 것이라고 기대, 즉 외국어 단어에도 상호배타성 가정을 사용하여 이해함을 시사한다. 반면, 이중 언어 사용 아동들은 중국어 시행에서 사물 A와 사물 C를 비슷한 비율로 선택하였고, 이는 이중 언어 환경에 있는 2세 아동들의 경우 외국어 단어에는 상호배타성 가정을 적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존 자료에 기초하여 본 연구는 상호배타성 가정을 동일한 언어 내에서는 사용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 간에는 사용하지 않는 능력의 연령에 따른 발달 양상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Byers-Heinlein 등(2014)은 언어 환경의 영향을 규명하였지만, 본 연구는 연령의 증가에 따라 단일 언어 사용 아동이 이러한 능력을 어떻게 발달시키는지 보고자 한다. 선행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외국어 단어에 대하여 상호배타성 가정을 보류할 수 있는 능력은 단일 언어 사용 아동의 경우 2세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Byers-Heinlein et al., 2014), 4세 전후에는 안정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Au & Glusman, 1990;
Haryu, 1998). 하지만, 3세 아동의 경우는 선행 연구에 따라서 비일관적인 결과를 제시한다. 3세 연령을 포함하여 3세 4개월∼5세 7개월(평균 4세 7개월) 아동의 전체 수행을 보고한
Au와 Glusman (1990)의 연구에서는 아동들이 외국어 단어에 상호배타성 가정을 보류하는 반면, 3세 아동의 자료를 분리해서 보고한
Haryu (1998)의 연구에서는 3세 아동들은 모국어 단어뿐만 아니라 외국어 단어에 대해서도 상호배타성 가정을 적용한다.
본 연구에서는
Byers-Heinlein 등(2014)의 패러다임을 사용하여 3세 단일언어 사용 한국 아동이 외국어 상황에서 상호배타성 가정을 보류하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타 연구들에서는 모국어 화자가 발화하는 모국어의 문장 안에 포함된 외국어 단어의 의미를 추론하는 과제(예: “이 중에 어느 장난감이 영어로
mose일까?”와 같은 방식으로 질문)를 사용한 반면(
Haryu, 1998),
Byers-Heinlein 등(2014)의 연구에서는 모국어(영어) 사용 실험자는 모국어만, 외국어(중국어) 사용 실험자는 외국어만을 사용하였고 검사 과제에서는 단어를 단독으로 제시하여 아동들이 외국어 단어를 좀 더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언어 화자 간의 대비를 명확하게 하고 문장 처리의 부담을 최소화한 과제를 사용한다면 기존 연구(
Haryu, 1998)에서와는 달리 3세 아동도 외국어 단어 이해 시 상호배타성 가정을 보류할 수 있을 것이라 가정하였다. 또한 2세 한국 아동도 같은 과제에서 검사하여
Byers-Heinlein 등(2014)의 결과를 반복 검증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에 대한 예측은 다음과 같다. 만약 아동들이 상호 배타성 가정이 한 언어 내에서만 적용되고 서로 다른 언어 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한국어 화자가 발화한 새로운 단어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물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반면, 외국어 화자가 발화한 새로운 단어에 대해서는 이러한 이해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국어 실험자에 의해서 알게 된 사물과 이름을 알지 못한 사물이 제시되었을 때 한국어 실험자가 낯선 단어를 언급하면 상호배타성 가정을 사용하여 이름을 알지 못하는 건넬 것이나, 유사한 상황에서 외국어 실험자가 낯선 단어를 언급하면 아동들은 낯선 단어가 이름을 알지 못한 사물도 될 수 있지만 이미 한국어 이름이 있는 사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상호배타성 가정을 사용하지 않아 특정한 반응 편향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동들이 새로운 단어가 속한 언어에 따라 상호배타성 가정 적용의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국어뿐 아니라 외국어에 대해서도 새로운 단어를 듣고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사물과 연결시킬 것이다.
논의 및 결론
본 연구는 한국어를 단일 언어로 획득하는 2–3세 아동을 대상으로 상호배타성 가정을 모국어와 외국어 간에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언제쯤 발달하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3세 아동의 경우 새로운 단어가 한국어 단어인지 외국어 단어인지에 따라 상호배타성 가정을 사용하여 해석하는 여부가 결정되었다. 한국어의 새로운 단어의 지시체를 찾는 과제에서는 상호배타성 가정을 사용하였지만, 외국어의 새로운 단어 지시체를 찾는 과제에서는 그러한 경향성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2세 아동의 경우 모국어와 외국어 모두에서 새로운 단어의 지시체를 찾을 때 상호배타성 가정을 일관되게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언어 간 유연하게 상호배타성 가정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2세에서 3세 사이에 발달함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3세 아동들이 화자와 언어적 지식을 공유하지 않을 때 상호배타성 가정을 보류하는 것을 보여주며, 이는 아동기의 상호배타성 가정이 절대적인 언어적 제약이 아닌 화용적 원리로 설명됨을 뒷받침 한다. 외국어 검사 시행에서 아동들은 다음과 같은 추론 과정을 거칠 수 있다.
1) 나는 무삐(A)가 ‘무삐’라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
2) 화자는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므로 그는 무삐(A)가 ‘무삐’임을 모른다.
3) 화자가 sefo를 달라고 말했다.
4) 화자는 A를 달라는 의도일 수도, B를 달라는 의도일 수도 있다.
3세 아동이 모국어 화자 상황과 외국어 화자 상황에서 상호배타성 가정을 다르게 사용했다는 것은 두 화자의 지식 체계를 별도로 표상하고 의도를 다르게 추론했음을 가리킨다. 즉, 3세 아동의 외국어 단어에 대한 상호배타성 가정의 보류는 의도추론 능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본 연구 결과는 선행 연구에서 밝혀진 것보다 더 어린 연령대에서 모국어와 외국어 간 상호배타성 가정을 달리 사용하여 단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본 연구의 3세 아동의 결과는 평균 연령 4세 7개월의 아동들이 언어 간 상호배타성 가정 사용을 보류한 것으로 보고한
Au와 Glusman (1990)의 결과와 일치한다. 하지만
Haryu (1998)의 3세 아동들의 결과와는 다소의 불일치를 보인다.
Haryu (1998)의 연구에서는 3세 아동이 외국어 단어에 대해서도 상호배타성 가정을 사용하는 결과를 보인 반면 본 연구의 3세 아동은 외국어 단어에 대해 상호배타성 가정을 보류하였다. 이러한 결과의 차이는 실험 절차상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실험자가 직접 아동과 외국어로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외국어 단어(예:
sefo)를 들려준 반면,
Haryu (1998)의 연구에서는 모국어 실험자가 아동에게 모국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난쟁이 인형이
mose를 갖고 싶다고 말했는데 어떤 장난감이 영어로
mose일까?”와 같이 외국어 단어를 모국어 문장에 삽입하여 질문하였다. 이와 같이 모국어 실험자가 모국어를 사용하여 외국어 단어의 의미를 질문하는 과제는 아동이 외국어 단어를 처리하는 데 혼란을 가져오게 했을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화자 간 대비를 명확하게 하고 새로운 검사 단어를 단어 자체로만 제시함으로써 아동의 인지적 부담을 줄였기 때문에 3세 아동이 언어 간 상호배타성 가정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음을 관찰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본 연구의 2세 아동의 결과는 모국어와 외국어 시행 모두에서 상호배타성 가정을 사용함을 보인
Byers-Heinlein 등(2014)의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다. 먼저, 학습단어의 학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결과는 적은 샘플 수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 16명 중 12명이 목표사물 아동으로 분류되었으나, 통계적 유의미성을 가지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학습단어 시행에서 학습단어를 학습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목표사물 선택 아동(
n = 12)에 대해서만 분석한 결과, 전체 아동 분석에서처럼 한국어 검사 시행(
p = .18)에서도, 외국어 검사 시행(
p = .25)에서도 우연 수준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 수행을 보였다. 따라서 한국어 및 외국어 검사 시행의 수행이 단순히 단어 학습의 어려움에 기인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Byers-Heinlein 등(2014)의 연구에서는 학습단어가 1음절이었던 반면(예:
fep), 본 연구에서는 2음절 단어(예:
무삐)로 제시되어 본 연구에 참가한 아동들이 더 많은 음절을 기억해야 했으므로 이것이 2세 아동의 학습단어 학습률 저하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또한, 2세 아동 역시 외국어 단어를 이해할 때 상호배타성 원리를 일관되게 사용하는 패턴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 아동들이 언어에 따라 상호배타성 가정 적용 여부가 달라짐을 캐나다 아동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이해함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한국어 시행에서 상호배타성 가정의 사용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가능성을 지지해주지 않는다.
본 연구의 2세 집단은 왜 한국어 검사 시행에서조차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호배타성 원리를 사용하는 것을 보이지 못했을까? 한 가지 가능성은 본 연구의 샘플 수가 적은 것에 기인할 수 있다. 16명 중 10명이 한국어의 새로운 단어지시체로 명칭을 모르는 사물을 선택하는 패턴을 보여, 다수가 상호배타성 원리를 적용하는 것으로 보이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샘플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가능성은 인지적 부담을 줄인 과제를 적용하였지만 2세 아동에게 어려운 과제의 요소가 남아있었을 수 있다. 본 연구에서 시행의 순서는 1차 한국어 단계, 외국어 단계, 2차 한국어 단계로 구성되었는데, 2차 한국어 단계에서 아동들이 인지적 부담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1차 한국어 검사 시행과 2차 한국어 검사 시행의 결과를 따로 분리하여 첫 시행을 비교하였을 때 나타나는 차이로 추정될 수 있다. 1차 한국어 단계의 첫 번째 한국어 검사 시행에서는 이름을 모르는 사물을 고른 아동의 수는 16명 중 13명(81%)이었던 반면, 2차 한국어 단계의 첫 번째 한국어 검사 시행에서 이름을 모르는 사물을 고른 아동의 수는 16명 중 8명(50%)이었다. 이것은 외국어 단계에서 친숙하지 않은 외국어 사용 실험자와 친숙하지 않은 사물들을 가지고 상호작용 하는 것이 2세 아동들에게 사회·인지적으로 부담스러운 과정이었고, 이로 인해 2차 한국어 검사 단계에서의 수행이 저하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외국어 검사 시행에서 인지적 부담이 있었다는 것은 누락된 시행(아동이 제시된 두 사물을 동시에 잡고 실험자에게 건넨 시행 또는 어떤 사물도 만지지 않은 시행) 수로도 추정할 수 있다. 2세 아동의 누락된 시행의 수를 비교하였을 때 한국어 검사 단계에 포함된 시행(학습단어 시행, 한국어 검사 시행)의 누락 비율은 3.9%였던 것에 비해 외국어 검사 시행의 누락 비율은 12.5%로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이는 본 연구의 과제보다 더 많은 요소의 인지적 부담을 감소시킨 패러다임으로 실험을 진행한다면, 2세 또는 더 어린 아동들도 3세 아동과 유사하게 모국어 내에서는 상호배타성 가정을 적용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 간에는 상호배타성 가정을 보류하는 체계적인 패턴을 보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응시시간 측정을 이용한 최근 연구는 이러한 가능성을 지지하고 있는데, 영아들도 서로 다른 언어 간에는 단어의 의미가 공유되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Scott와 Henderson (2013)의 연구에서는 13개월 영아들이 서로 다른 언어는 단어의 의미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증거를 제시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13개월 영아들에게 두 가지 물체가 제시된 상황에서 모국어(영어) 화자가 한 가지 물체를 잡고
medo라고 말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그 후, 외국어(프랑스어)를 말하는 화자가 등장해 모국어 화자가 선택한 물체와 같은 물체를 잡고
medo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여주거나 모국어 화자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물체를 잡고
medo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두 장면에 대한 13개월 영아들의 응시 시간을 비교하였다. 그 결과, 외국어 화자가
medo라고 말한 뒤 모국어 화자가 이전에 선택했던 동일한 물체를 잡는 장면에 대한 13개월 영아들의 응시시간이 증가하였다. 즉, 13개월 영아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화자 간에 단어의 의미가 공유되는 것을 놀랍게 여기는 것이다. 영아들이 13개월에 이미 서로 다른 언어의 의미 체계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고 있다면, 추후 연구에서는 암묵적인 과제를 통해 서로 언어 간 단어 의미 공유에 대한 이해와 유연한 상호배타성 가정의 사용을 결합시키는 능력의 발달 과정을 검증해볼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외국어 단어에 대한 상호배타성 가정 보류의 발달적 출현을 알아보고자 하였으며, 서로 다른 언어 간에는 상호배타성 가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해는 2세에서 3세 사이에 발달함을 보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적어도 3세 아동들은 서로 다른 언어는 의미 체계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지식에 근거해 언어 간 유연하게 상호배타성 가정을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연구에서는 한국에서의 외국어 학습 경험이 이러한 발달 과정에 영향을 주는지를 검증함으로써, 한국에서의 외국어 학습의 발달적 영향에 대한 연구(
Han & Lee, 2013)와 함께 외국어 단어 학습의 적절한 시기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